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더 스미스 (문단 편집) === 해체 === 1987년, 밴드는 메이저 레코드사인 EMI와 계약한 뒤[* 스미스의 해체 뒤 이 계약은 모리세이의 솔로 음반계약으로 변경된다.] 러프 트레이드와의 마지막 앨범으로 계획했던 4번째 앨범 <[[Strangeways, Here We Come]]> 작업을 시작하고, 컴필레이션 앨범 과 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 사이 밴드 내부 갈등은 최고조로 올라갔고 조니 마는 밴드 활동에 환멸을 느껴 투어에 불참했다. 이에 모리세이는 대체 기타리스트를 찾아 공연했고 마는 모리세이의 행동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해체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마는 [[우정]]이 깨지고 환멸을 느끼게 되면서 그제서야 그들의 음악과 미래 문제가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해체 직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EMI와 계약한 스미스는 본격적인 미국 진출을 위해 'Sheila Take a Bow'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뮤직비디오 촬영 당일 모리세이는 또 변덕을 부리며 나타나지 않았다.[* 모리세이는 이 [[버릇]]을 못고치고 솔로 활동때도 [[캔슬]]의 아이콘이 된다.] 스태프들이 당황하여 모리세이를 데리러 그의 집으로 갔다. 마는 그 모습에 "이 [[록밴드|밴드]]는 끝이야"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상술하였듯이 스미스를 인디 밴드에서 상업 밴드로 만들고 미국 진출에 망설였던 사람은 오히려 마였다. 마는 밴드 활동 안팎을 돌봐야 하는 스트레스[* 모리세이는 매니저들을 비롯해 마와 친한 스탭들을 집중적으로 해고했다. 이 당시에 마와 음악적으로 잘 맞았던 밴드의 프로듀서 존 포터 또한 해고하여서 마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였다. 이 때문에 마는 점점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됐고 스스로가 망가지는걸 느꼈다. 모리세이는 포터를 스티븐 스트릿으로 교체하였다. 스트릿은 직후 미국 투어 때 스미스와 함께 했는데 이때 마가 매우 망가지고 취한 모습으로 스미스의 전통의 답답함을 그에게 토로했다고 말한다. 그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모리세이와 마는 그때까진 서로를 존중했지만 끝이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고.]와 이 사건 때문에 모리세이에게 아주 조금 남아 있던 애정마저 없어짐을 느끼며 바로 다음 달 [[LA]]로 잠적한 뒤 [[토킹 헤즈]]와 작업한다. 발빠르게 이 사실을 알게 된 [[NME]]는 조니 마가 밴드를 떠났고 스미스는 해체할 것이라는 기사를 냈는데, 마는 그 기사가 모리세이의 언론플레이라고 오해하고[* 사실 모리세이가 아니라 NME 기자 대니 켈리(Danny Kelly)가 정보를 입수해서 기사를 낸 것. 모리세이는 당시 멘붕 상태라 집에만 있었다고.] 결국 그렇게 영영 밴드를 떠났다. 해체의 주요 원인은 스미스의 유명세 때문에 밴드 안팎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마가 팀을 떠난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언제 그만둬야 할지를 알아야 하는 법이다.''' -조니 마] 해체 후 마는 스미스의 엔지니어에게 "오늘 아침에 기쁜 마음으로 일어날 수 있었어. 난 더이상 스미스가 아니니까."라고 했다. 모리세이는 새 기타리스트인 아이버 페리(Ivor Perry)를 영입하여 마의 공백을 메꾸고 더 스미스의 활동을 지속하려 얼마간 노력하였으나 그는 마처럼 모리세이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결국 모리세이와의 갈등 끝에 곡 작업 도중 스튜디오를 뛰쳐나갔다. 모리세이는 스미스를 지속하는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Strangeways, Here We Come]]> 발매 직후 스미스 해체를 공식 발표했다. 갑작스런 해체에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리암 갤러거]]에 따르면 스미스가 해체를 발표한 날 맨체스터 사람들은 '목 잘린 [[닭]]'처럼 어쩔줄 모르며 서성댔다고. 해체 직후 [[덴버(도시)|덴버]]의 라디오 방송국에는 스미스 팬이 난입해 DJ에게 총을 겨누고 스미스 노래를 계속 틀도록 협박해서 결국 5시간 동안 스미스 노래를 튼 사건[* 이 사건은 스미스의 노래 제목을 차용한 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는 중이다. [[조 맹거넬로]], 엘라 콜트레인 등이 주연으로 출연한다고 알려졌다.]도 있었다. 조니 마는 '''밴드를 해체시킨 죄로 나만큼 고통 받은 사람은 [[오노 요코]]'''[* 대부분 오노의 등장보다는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사망 뒤에 후임 매니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을 비틀즈 해체의 가장 큰 원인으로 뽑는다.] '''말고는 없다.''' 라며 인터뷰에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모리세이는 밴드의 활동 재개를 원했다.[* 모리세이는 스미스가 앨범을 30장은 낼 줄 알았다.] 실제로 모리세이는 스미스의 베이시스트였던 [[앤디 루크]]가 작곡한 곡들을 솔로 1집 앨범에 수록하였고 [[1988년]] 자신의 솔로 1집 투어 하이라이트로 울버햄튼에서 열릴 크리스마스 공연에서 스미스 멤버들을 모두 불러서 공연하고 이후 구체적인 일정을 수립하여 스미스 재결성을 천명하는 계획을 세우기까지 한다. 다른 멤버들은 모리세이의 의견에 동의하였으나 조니 마는 스미스를 재결합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공연에도 불참하였다.[* 결국 모리세이는 스미스의 임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크레이그 개넌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모리세이는 이 때의 조니 마가 보여준 태도에 크게 실망하며 여러 매체들을 통해 "지금까지 내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스미스를 조니 마는 너무 손쉽게 끝내버렸다."며 공공연히 조니 마를 비난하였고 3년 동안 투어를 돌지 않는다. 2013년에 발간된 모리세이의 자서전에 1992년 [[모리세이]]에게 쓴 마의 편지 전문이 있는데, 여기서 마가 왜 그렇게 완고한 태도를 보였는지 알 수 있다. >{{{#!wiki style="width=100%" Dear Moz, Sincere thanks for your letter last week and for your concern. I do realize that it must have taken a lot of brainache/heartache to have gotten in touch. The main thing that I want you to know is that I really regret us not being friends. I've only recently come to realize that you genuinely don't know all the reasons for my leaving. To get into it would be horrible, but I honestly hated the sort of people we became. I have no ambitions to be a solo guitar player. I will never point the finger at anyone but myself, and I am glad I took a step towards making my life sane. After getting your postcard I felt that the only way to explain things would be to come round and see you personally. I also felt bad that you were so unhappy and it's only circumstances that made it possible. I hope I see you soon. Love, Johnny}}} >{{{#!wiki style="width=100%" ''' 모즈에게, 지난주에 보내준 편지와 배려 고마워. 연락하기 위해서 분명 머리도, 마음도 많이 아팠을 거라는 거 알아. 무엇보다도, 더 이상 우리가 친구가 아니게 된 것을 후회한다는 걸 네가 알아줬으면 해. 내가 왜 떠났는지에 대해 네가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되었어.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은 끔찍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난 [[락스타#스타 음악인 혹은 유명인사를 가리키는 표현|우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들]]이 싫었어.'''[* 1987년 스미스의 미국인 매니저는 '너희 투어 한번만 더하면 [[U2]]같이 될 수 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니 마는 '근데…모두가 U2가 되고 싶은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었다고.] '''난 솔로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은 야심같은거 없어. 나 아닌 누구도 탓할 생각 없고, 그냥 내 생활을 정상적으로 되돌리기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는 게 기뻐. 너의 엽서를 받고 나니, 이런 얘기들을 자세히 하려면 널 직접 보는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네가 많이 우울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내 마음도 속상하지만. 조만간 볼 수 있기를 바라. 사랑을 담아, 조니''' }}} 이 편지를 쓴 직후 조니 마와 모리세이는 스미스의 노래 'Suffer Little Children'의 배경이 된 지역 Saddleworth Moor에 함께 차를 타고 가 대화하였지만 의견 차를 좁힐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 모리세이가 솔로 뮤지션으로서 두각을 나타내자 모리세이 쪽에서 재결합을 거절한다. [[1994년]] 모리세이는 스미스의 앨범을 [[CD]]로 재발매할 것이라는 소식을 레코드사로부터 전해듣고 "새삼스레 스미스 앨범의 재발매라구요? 지금 나에게 스미스란 강둑에 말라붙어 죽어가는 물고기와 다름없는 의미일 뿐인데도 말입니까?"라고 말하면서 스미스 앨범들의 [[CD]] 발매를 반대하기도 했다. 또 "스미스를 재결합 하느니 내 [[불알]]을 먹겠다. 이게 [[채식주의자]]에겐 최선이지." "우리가 예전처럼 한 스튜디오에 들어가는 방법은 다 총으로 쏴죽여서 시체를 한 구 씩 갖다놓는 방법밖에 없다." 등 악명 높은 발언을 했다. 2010년대 들어서 오히려 [[조니 마]]는 비록 스미스 재결합에는 회의적이지만 과거 태도와 달리[* 2000년대에 조니 마가 힐러스로 활동할 때 공연에서 관객들이 스미스 노래를 연주하라며 난동을 피웠지만 마는 관객들의 요구를 철저히 묵살했다. 조니 마는 이 시기에 딱 한 번 공연 분위기가 너무 조용하자 10초간 'Bigmouth Strikes Again'을 연주했으며 좋아서 날뛰는 관객들에게 "다시는 이런 짓 안할겁니다."라고 했다.] [[앤디 루크]]와 종종 협연하기도 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_-wrbe77xkA|#]] 스미스 시절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건지 스미스 곡을 연주하고 노래도 그냥 자기가 직접 부른다. [[모리세이]]도 물론 백업 밴드와 함께 스미스 곡을 부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74BA7CUrGYw]] 조니 마 공연 실황에는 '노래를 모리세이가 불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댓글이 달리고 모리세이 공연 실황에는 '저 백업 밴드 치우고 조니 마를 데려와라'는 댓글이 달린다. [[노엘 갤러거]]도 딱 이런 요지로 스미스 재결합을 언급한 적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7HWb-I8KyA|#]] [[1995년]] 베이시스트 앤디 루크와 드러머 마이크 조이스, 심지어 크레이그 개넌까지 모리세이와 조니 마에게 스미스 시절 저작권료와[* 모리세이와 조니 마가 각각 인세의 40%를 받으며 더 스미스의 수익을 독차지했다는 주장.] 투어 로열티 미지급 문제로 소송을 걸기도 하였다. 루크는 합의 후 취하, 조이스는 승소하였다. 모리세이가 이 사건을 계기로 마이크 조이스에게 바친 노래가 'The More You Ignore Me, the Closer I Get'[[https://www.youtube.com/watch?v=jGdSpYMsk5A|#]] 소송 당시 모리세이는 "스미스는 나와 [[조니 마]]의 것이고 니네는 언제든 대체 할 수 있는 '''잔디깎이'''나 다름 없었어!"라면서 크게 분노하였다. 이때 모리세이는 소송을 지속할 의욕이 없었던 조니 마도 같이 비판했다. [[1997년]]까지 이어진 이 소송 이후 모리세이는 2004년 복귀할 때 까지 솔로 활동을 중지하였으며 팬들과 언론이 계속해서 밴드 재결성 소망을 드러내도 스미스가 재결합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모리세이와 마가 스미스 재결합 공연을 위해 제안받은 금액은 3번 공연에 500~600억정도가 평균이며 모두 거절하였다. 모리세이가 언급한 가장 매력적인 오퍼는 2012년 코첼라 록 페스티벌에 모리세이와 마 둘만이라도 '''스미스로서''' [[헤드라이너#대형 음악 공연에서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메인 이벤터]]를 서준다면 그 해 코첼라에 있는 모두가 [[채식]]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모리세이가 코첼라 서브헤드라이너를 섰을때 야외 공연이라 바비큐 굽는 냄새가 나자 공연 중에 "어디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서 불쾌하군. 그게 사람고기였으면 좋겠어."라고 발언해 큰 물의를 빚었다. 코첼라 에이전트는 바로 그걸 미끼로 썼다.] 머리를 굴려 돈이 아닌 다른 미끼를 던졌지만 재결합 공연은 없었다. 진지한 얘기는 아닐테지만, 마는 스미스 팬인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재결합을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 2006년 인터뷰에서 모리세이는 "이것은 돈과 관련된 게 아니고, 매우 감정적인 문제입니다. 단순히, 내가 정말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노래할 순 없거든요."라고 얘기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di154-L0YY|#]] 2008년 모리세이와 마가 재결합을 구체적으로 논의[* 그 중에는 [[크립스#영국의 밴드]]와 합동 투어를 하는 내용도 있었다.]하였지만 다시금 둘 사이에 불신이 싹터 무산되었다고 8년이 지난 2016년에 밝혀지기도 했다. [[https://pitchfork.com/news/69408-the-smiths-discussed-reuniting-in-2008/|#]] 며칠 간 연락을 주고받다가 조니 마가 공연 때문에 멕시코로 간 후 두 사람의 연락이 다시 끊겼다고. 2022년, 모리세이가 2021년 1월 즈음에 [[조니 마]]에게 인터뷰 때 자신을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담은 편지를 썼다는 것이 밝혀졌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ostrockgallery&no=53559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